That Sounds GreaT!!!
거미여인의 키스 (at 아트원 시어터) 본문
'무대가 좋다' 기획은 연극을 좋아하는 내 마음에 쏙 드는 기획이다.
햇수로 7년 째, 한달의 한 두번은 영화든,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아님 콘서트든
문화생활을 즐기자! 라고 마음먹었고 아직까지도 그 다짐은 유효하게 진행중이다.
다양한 장르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연극.
배우들의 열정적이고 혼신을 쏟아붓는 연기를 보고 항상 감탄한다.
그리고 연극을 통해 간접적으로 세계를 경험한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 수 있는 거다.
그런 의미로 연극은 나에게 내 삶에 있어서 세상을 보는 작은 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연극의 매력을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줄 곧 있었는데
'무대가 좋다' 기획은 대중들에게 연극을 알리고, 그들에게 연극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오늘 내가 보고온 '거미여인의 키스' 역시 무대가 좋다의 일곱번째 작품이었다.
원작을 보고 싶었던 찰나에 무대에 올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예매를 했고-
대학로로 향했다.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대강의 스토리는 알고 있던 터라 극에 집중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감정에 충실하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겁내지 않는 몰리나와
감정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더 중요시하게 생각하고 오로지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발렌틴.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수감자는 감옥이라는 폐쇄되고 한정되어 있는 공간에 있다.
낭만주의자에 사랑을 열렬히 추종하는 몰리나는 쉴새없이 발렌틴에게
영화이야기-반 정도는 몰리나가 지어낸-를 해주며 자신의 느낌을 생각을 표현하지만
발렌틴은 그저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그 이야기를 듣는 것 뿐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사람의 사고의 틀은 벌어진채 그대로 있지만.
마음의 공간은 점점 밀착되어가고 있다.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좁은 공간에서 마음의 밀착은 사고에 까지 변화를 일으키게 되나보다,
발렌틴을 속여 정보를 캐내오라는 소장의 지시에
그종안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고, 그 어떤 선택-성(性)의 선택마저도-도 할 수 없었던 몰리나는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발렌틴에게 접근하게 된다.
하지만 감정에 충실한 몰리나는 발렌틴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끼면서
그 감정을 고스란히 자신에게 가져오게 되고
자신의 의지로 처음이자 마지막인 선택을 하게 된다.
표범여인을 동경했던 몰리나는 결국 표범여인이 되는 길을 택하게 되는 것.
두 배우로만으로 이뤄진 연극에다 두 캐릭터가 매우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극보다 유독 감정이입이 잘 됐던 연극이었다.
나는 감정에 크게 휘둘리는 타입은 아닌지라 몰리나보다 발렌틴의 측면에서 연극을 보게되었다.
극 중에서 발렌틴은 몰리나에게 이용당하는 것처럼 비춰졌지만
사실은 몰리나에게 이용당한게 아니라 몰리나를 이용한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천국을 만드는 것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믿었던 발렌틴은
몰리나로 인해 자신의 속에 내재되어 있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고
그 두려움과 외로움을 몰리나에게 안겨주면서 소장의 지시와 자신의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던 몰리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결국엔 몰리나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된 것이다.
물론 발렌틴이 매우 영리해서 의도적으로 몰리나를 이용하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몰리나에게 보여줬던 마음은 진심이라고 생각하니깐. 그리고 발렌틴의 그 감정을 꺼내게 만든건
바로 몰리나 였으니까-
발렌틴은 몰리나보고 거미여인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을 옭아메는 그런 거미여인
하지만 내 생각에 진짜 거미여인은 발렌틴 자신이었다고 생각한다.
발렌틴이 몰리나를 옭아멘거다.
몰리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한결같이 자신을 보였고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을 강요하지 않았다.
몰리나는 그저 발렌틴의 두려움과 외로움이라는 덫에 걸려든것 뿐이다.
이 연극을 보면서 나는 조금 분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감정보다 이성을 우선시했고, 이성이 감정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난 이성을 먼저 생각했고, 감정 따윈 어차피 일시적인 거니까
그것에 휘둘리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감정의 힘이라는 게 결코 만만한게 아니며- 무시해서는 안되는 거였다는 걸 알고
조금은 패배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내 감정만을 따라 살아야겠다!! 라고 다짐한건 아니다.
아직까지도 난 이성적인 인간이고 또 이성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
다만 한 가지 변한게 있다면, 이성에 지나치게 얽메여 다른 중요한 것을 지나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거라는 것이다.
내가 느낀 것을, 내가 담아뒀던 마음을 꽁꽁 싸매두지 않으려고 한다.
계속 안고만 살아가면 힘들어 지는건 결국 나일테니까.
(+) 혼자 연극을 보러간건 이번이 두번째, 처음엔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괜히 쑥쓰러웠는데
한번 해보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게 되버렸다. 이걸 점점 즐기게 될 것같아 살짝 불안한 마음도 든다.
(++)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한 커플이 지나가면서 나누는 대화에 잠시 가던 길을 멈추게 되었다.
나는 이성과 감성의 입장에서 연극을 봤는데 그 커플은 여성/남성의 입장에서 본듯하다.
뭐, 그 두가지 카테고리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지만-그렇다고 완전히 같은 것도 아닌-
사람의 시선이란 정말 다양하구나. 나는 너무 내 생각을 일반화하고 있는 것이었구나.
란 생각에 정신이 버쩍!
(나 정말 이러다가 평생 혼자 살지도 몰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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